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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제

by arirangyo 블로그 입니다. 2025. 9. 5.

 

발해의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제

동아시아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던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 는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고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강력한 제국입니다. 발해의 역사적 가치와 그 위대함은 오늘날에도 많은 연구자들에게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발해가 광활한 영토와 다민족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구축했던 '5경 15부 62주'의 행정 체제 는 그들의 통치 역량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 정교하고 체계적인 행정 구조는 발해의 국력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발해 행정 체제의 근간 - 5경의 위상과 역할

발해의 행정 구역은 수도권과 지방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구조를 지녔으며, 그 중심에는 5개의 중요한 수도, 즉 '5경' 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5경은 단순히 도시를 넘어 발해 제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중심지로서 각기 독자적인 역할과 위상을 담당했으며, 제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상경용천부 - 제국의 심장

발해의 최고 수도이자 제국의 심장부 는 바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였습니다. 현재의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寧安)시 발해진에 위치했던 이곳은 발해의 정치와 행정의 구심점으로서, 황궁과 중앙 관서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계획도시로서,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했으면서도 고구려의 건축 양식을 접목한 독특한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약 2.5㎢에 달하는 넓은 성역 내에는 궁성, 황성, 외성 등 삼중의 성곽이 견고하게 축조되어 있었으며, 당대의 동아시아 도시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와 웅장함을 자랑했습니다. 이곳에서 발해의 최고 통치자인 황제가 제국의 모든 중요 정책을 결정하고 반포했음은 그 중요성을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중경현덕부와 동경용원부 - 전략적 요충지

상경 외에도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는 발해 행정 체제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중경현덕부는 발해의 경제 중심지이자 주변 부족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이곳은 서쪽으로 거란과의 교역로가 연결되는 지점으로, 국제 무역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편, 동경용원부는 현재의 훈춘(琿春) 지역에 위치하여 발해가 일본과 교류하는 데 있어 해상 교통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동해로 진출하는 관문으로서, 발해의 대외 관계, 특히 일본과의 활발한 외교와 무역을 지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전략적으로 배치된 5경의 역할이 매우 컸음이 확인됩니다.

남경남해부와 서경압록부 - 변방 방어 및 교류

마지막으로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 는 발해의 광활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주변 세력과의 교류를 담당했습니다. 남경남해부는 현재 북한의 함경남도 북청 지역으로 추정되며, 신라와의 접경 지역을 감시하고 해상 방어를 책임지는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었습니다. 신라와의 관계가 항상 원만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서경압록부는 현재의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 일대에 위치하여 압록강 유역을 통제하고 거란 등 서방 세력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처럼 5경은 단순한 행정 중심지를 넘어, 발해 제국의 광활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주변 세력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15부 - 지방 통치의 핵심 단위

발해는 5경 외에도 '15부'라는 지방 행정 단위 를 두어 제국의 광대한 영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습니다. 15부는 5경 주변 지역을 포함하여 주요 거점 지역에 설치되었으며, 각 부에는 '부사(府使)' 또는 '도독(都督)'과 같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배치되어 지방의 행정과 군사를 총괄 했습니다. 이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확고히 하려는 발해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부의 기능과 지역적 특색

각 부는 행정, 군사, 경제적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이 발달한 지역의 부는 식량 생산과 조세 징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국경 지대의 부는 군사적 방위와 주변 민족과의 관계 관리에 더 큰 비중을 두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각 부는 지리적, 민족적, 경제적 특성에 따라 그 기능과 역할이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뿐만 아니라 말갈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으므로, 각 부의 통치 방식 또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고려한 행정은 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유력 지배층의 참여와 중앙 통제

발해의 15부 체제에서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의 토착 유력자들, 즉 말갈족의 촌장이나 고구려 계통의 호족들이 행정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발해가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아우르기 위해 중앙의 통제와 지방의 자율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 을 찾았음을 시사합니다. 중앙은 주요 관직을 통해 핵심적인 지배권을 유지하면서도, 지방의 실정을 가장 잘 아는 토착 지배층의 협력을 얻어 통치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인 지배를 도모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유연함은 발해가 오랫동안 강력한 제국으로 존속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62주 - 실질적인 행정 말단

15부 아래에는 다시 '62주'라는 더욱 세분화된 행정 단위 가 존재했습니다. 주는 발해 행정 체제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단위로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각 주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자사(刺史)'가 배치되어 주민들을 직접 통치하고, 조세 징수, 부역 동원, 치안 유지 등 실질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 했습니다. 62주 체제는 발해 제국의 중앙집권적 통치력이 얼마나 세밀하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주의 구성과 역할

각 주는 특정 지역의 주민들을 직접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시, 군 단위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사는 주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주민들로부터 조세를 거두어 중앙 정부에 납부했으며, 필요할 때는 주민들을 부역이나 군역에 동원하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또한, 법률을 집행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등 사법적 역할까지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세분화된 주의 설치는 발해 정부가 광대한 영토 내의 모든 주민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자 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중앙집권 강화의 초석

62주 체제는 발해의 중앙집권적 통치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초석 이었습니다. 제국의 변방에 이르기까지 중앙의 행정력이 미치도록 함으로써, 지방 세력의 독자적인 성장을 억제하고 전체 제국을 하나의 유기적인 단위로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과거를 상기한다면, 발해는 지방 분권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을 유지하는 것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두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62주의 존재는 발해의 통치 역량이 결코 약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발해 행정 체제의 역사적 의의와 평가

발해의 5경 15부 62주 행정 체제는 단순한 제도적 나열을 넘어, 고구려의 계승 의식과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통치 모델을 확립했던 발해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줍니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발해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상을 재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구려 계승과 당나라 영향의 조화

발해의 행정 체제는 고구려의 전통적인 지방 통치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당나라의 '주현제(州縣制)'와 같은 선진적인 행정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발해만의 독특한 형태로 발전 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5경 체제는 고구려의 5부 체제를 연상시키면서도 당나라 수도 제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부와 주를 통한 지방 통치는 당나라의 제도와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발해는 이러한 외래 요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자신들의 현실에 맞게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이는 발해가 단순한 모방 국가가 아니라, 창조적인 재해석을 통해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한 주체적인 국가 였음을 의미합니다.

다민족 국가 통치의 성공적인 모델

발해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말갈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5경 15부 62주 체제는 이처럼 민족 구성이 복잡하고 영토가 광활한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데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 했습니다. 각 지역의 특성과 민족 구성을 고려하면서도, 중앙의 통제력을 잃지 않는 유연한 행정 시스템을 통해 발해는 약 200여 년간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체계적인 통치 덕분에 민족 간의 심각한 갈등 없이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음은 높이 평가될 만합니다.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 미친 영향

강력하고 안정적인 행정 체제는 발해가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해동성국'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위상 1 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 내부적인 결속과 효율적인 자원 동원을 통해 발해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당, 일본, 신라, 거란 등 주변국들과 활발한 외교 및 무역 활동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발해의 행정 체제가 단지 국내 통치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국의 대외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까지 기여 했음을 시사합니다. 발해의 5경 15부 62주 체제는 이처럼 다층적인 의미에서 동아시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됩니다. 발해의 5경 15부 62주 행정 체제는 단순한 과거의 제도가 아니라,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아우르며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했던 발해의 지혜와 역량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 체계적인 통치 구조는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발해의 행정 체제 연구를 통해 고대 국가의 통치 기술과 사회 운영 방식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